Saturday, 13 September, 2025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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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 종교인 대종교를 창시한 나철 (1863년 - 1916년)

민족 종교인 대종교를 창시한 나철 (1863년 - 1916년)У вашего броузера проблема в совместимости с HTML5
나철은 1863년 전라남도 보성에서 태어났습니다. 원래 이름은 '인영'이고 호는 '홍암'입니다. 21살 때 과거에 장원 급제하여 많은 사람들의 기대를 한 몸에 받았습니다. 그러나 부정자라는 아주 낮은 벼슬을 했을 뿐입니다. 당시는 일본의 간섭이 매우 심했던 시기였지요. 그래서 나철처럼 일본에 대항하던 사람들은 높은 벼슬에 오를 수 없었습니다. 그는 결국 벼슬에서 물러나 '유신회'라는 비밀단체를 만들어 독립운동을 했습니다. 일본으로 건너난 그는 일본 왕과 대신들에게 우리나라의 독립을 주장했습니다. 그러자 그들은 오히려 그에게 뇌물을 주어 꾀려고 했습니다. 차라리 그는 국내에 있는 친일파를 제거해야겠다는 생각으로 이듬해 우리나라로 돌아왔습니다. 그러나 1년 후인 1905년 우리나라가 일본에 외교권을 빼앗긴 을사조약이 체결되었습니다. 나철은 그 조약에 찬성한 5명의 대신들(을사 오적)에 대해 암살할 계획을 세웠지만 실패로 돌아가 체포되었습니다. 재판에서 10년의 유배를 선고 받고 귀양살이를 하던 중 병이나 귀양에서 풀려났습니다. 1909년 단군을 믿고 따르는 '단군교'를 만들어 항일 투쟁을 펼쳐나갔습니다. 단군교는 그 이듬해 '대종교'로 이름이 바뀌었습니다. 하지만 일제가 대종교를 법으로 금지하자 이에 분노한 그는 구월산으로 들어가 유언장 한 장만을 남겨둔 채 자결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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