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아버지여 만일 할 만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하시고"
(마태복음 26:39)
"할 만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이 말씀을 인간적으로만 보면,
메시야이신 예수님이 하신 말씀이라고 하기엔,
너무 나약해 보이는 것처럼 느껴질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 말씀안에는
인간인 우리에게 아주 실제적인 위로와 은혜가 담겨 있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이십니다.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빌 2:6)
그분은 태초부터 계셔서 모든 만물을 친히
말씀으로 창조하신 하나님 그 자체이십니다.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요 1:1)
그런 하나님께서
신적인 권세를 다 내려놓으시고
친히 인간의 몸을 입고 이땅에 오셔서
인간이 가진 속성대로 사시면서
하나님 아버지의 뜻에 순종해 나가셨습니다.
"할 만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그런 예수님께서 하신 위 말씀은 바로
인간이 가진 그대로의 내적 속성에 기반한 말씀이셨습니다.
즉 하나님이신 예수님께서도
우리와 같은 인간의 몸을 입고
그 내면의 속성까지 다 가지고 계셨기에..
그런 엄중한 결단의 상황에선
자칫 나약해보일 수 있는 인간의 마음상태를
그대로 드러내셨던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에게 매우 큰 위로가 됩니다.
예수님께서 이처럼
인간의 나약한 속성을 가진 삶을 사셨기에,
우리의 마음도 누구보다 잘 아시기 때문입니다.
"우리에게 있는 대제사장은
우리의 연약함을 동정하지 못하실 이가 아니요
모든 일에 우리와 똑같이
시험을 받으신 이로되 죄는 없으시니라"
(히브리서 4:15)
인간의 몸을 입고
인간의 내적 속성 그대로 사셨지만,
죄는 없으셨다고 말씀합니다.
이 말씀이 의미하는 바는
40일간 금식하시며 마귀에게 시험받은 것과 함께..
이땅에서의 생애동안
인간이 가진 속성들이 자연스레 표출되는
그런 삶을 사셨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예수님도 배가 고프셨고(마 21:18),
졸리기도 하셨고(막 4:38),
화가 나기도 하셨고(마 21:12),
슬퍼서 눈물도 흘리셨습니다(요 11:35).
그런 속성이 그대로 드러나는 삶을 사셨기에,
인류구원을 위한 마지막 과업을 이루시기 직전에는
인간적 감정상태까지 그대로 드러내셨던 것입니다.
"베드로와 세베대의 두 아들을
데리고 가실새 고민하고 슬퍼하사
이에 말씀하시되 내 마음이
매우 고민하여 죽게 되었으니
너희는 여기 머물러
나와 함께 깨어 있으라 하시고
내 아버지여 만일 할 만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하시고"
(마태복음 26:37-39)
그런 내석 속성에 의해
잠깐의 영적인 씨름이 있었지만..
그럼에도 예수님은..
그런 모든 내적인 어려움을 다 거스르시고
하나님 아버지 뜻에 순종함으로 나아가셨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결단하여 순종함으로 나아가셨을 때,
천사가 하늘에서 내려와 주님을 도왔습니다.
"천사가 하늘로부터 예수께 나타나 힘을 더하더라"
(눅 22:43)
사람의 힘만으로는 결코 할 수 없는 일이었기에
천사가 나타나 주님을 도왔던 것이고..
무엇보다 인간의 내적속성을 그대로 가지고
영적인 씨름을 겪으시면서
끝까지 주님 뜻에 순종해나가셨기에..
천사의 도움이 있었던 것입니다.
주님은 겟세마세에서
십자가에 죽으시기까지
인간의 존재적 속성 그대로 나아가셨습니다.
당신께서 어떻게 인류구원을 위한
십자가의 대속제물이
되셔야 하는지를 알고 계셨기에,
죄로 인해 받아야 할 고통의 대가 역시
그대로 다 감내하셔야 했습니다.
"쓸개 탄 포도주를 예수께 주어 마시게 하려 하였더니
예수께서 맛보시고 마시고자 하지 아니하시더라"
(마 27:34)
당시에 쓸개 탄 포도주는
신체적인 고통을 덜어주는
일종의 마취제 역할을 하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쓸개 탄 포도주를 주었을 때,
주님은 그런 사실을 아시고
그 포도주를 입에 대지 않으셨습니다.
인류가 죄로 인해 받아야 할 그 고통의 대가를
있는 그대로 짊어지셔야 했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예수님은
인간이 가진 모든 어려움들을 다 체험하셨고,
인간이 당해야 할 극한의 고통까지 대신 겪으셨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주님을 의지하며
주님이 걸어가신 그 길을
우리 또한 걸어가야 하는 것이고,
능히 걸어갈 수 있는 것입니다.
주님은 이걸 아셨기에
우리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누구든지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지 않는 자도
능히 내 제자가 되지 못하리라"
(눅 14:27)
당신께서 모든 것을 다 체험하셨기에
우리가 살면서 겪게 되는 모든 어려움들을
누구보다 잘 아시는 것이고..
우리가
그런 인간적인 어려움 속에서도
주님 뜻대로 나아가려는 결단으로
주님앞에 나아갈 때...
주의 천사가 나타나 주님을 도왔던 것처럼
우리에게도 성령께서 친히 도우시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로마서 8:26)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이신 예수님께서
당신의 신적 권세를 내려놓으시고 이땅에 오셔서
우리가 겪어야 할 죄의 대가를 대신 받으시고,
우리가 겪는 어려움도 다 겪으면서..
영적인 씨름이 있었지만
그럼에도 끝까지 순종하며 나아가셨다는 것을
절대 잊지 말아야 합니다.
만약 우리 스스로
"인간은 연약한 존재니 어쩔 수 없어"라고 합리화하며
죄에 대해서도 그 틈을 계속 열어놓고 있고..
순종하는 부분에 있어서도
인간적인 연약함이나 현실적 상황을 핑계대며
얼토당토 않는 변명으로 일관한다면..
설사 그런 중심으로
일주일에 여러번 교회에 나가
예배행위를 드리고 있다 하더라도..
실제적인 삶은
예수 그리스도를 내 삶에 전혀 투영시키지 않고,
내가 주인되어 내 뜻대로 사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입술로는
예수님을 믿고 있다고 말하고
스스로 그리스도인이라 여기며 살아갑니다.
주님은 분명히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좁은 문을 통과하여
걸어가는 길은 좁고 협착하여
찾는 이가 적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마 7:13-14)
그만큼 진리안에서 살려고 하면 할수록
따라오는 현실적인 어려움들이 많고..
우리가 가진 나약한 존재적 속성들로 인해,
말씀대로 사는게 쉽지 않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현실속에서
말씀에 순종하기 쉽지 않은 어려움들과
인간적인 연약함들이 있지만..
그럼에도 결단하고
주님 뜻대로 순종하려고 할 때,
성령님이 역사하시고 우리를 도우십니다.
그래서 우리의 연약함이나 현실의 문제가
하나님앞에 핑계거리가 될 수 없습니다.
그리스도인은..
내 힘으로 사는게 아니라
주님의 능력, 즉 위로부터 주어지는
전적인 은혜로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그 은혜가 부어지면
그 때부터는 내가 하는게 아니라
하나님이 하십니다.
그래서 마가복음 10장 27절에서 주님은
"사람으로써는 할 수 없지만
하나님은 다 하실 수 있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주님이 친히 이땅에 오셔서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할지에 대한
모든 본을 다 보여주셨습니다.
"이를 위하여 너희가 부르심을 받았으니
그리스도도 너희를 위하여 고난을 받으사
너희에게 본을 끼쳐
그 자취를 따라오게 하려 하셨느니라"
(베드로전서 2:21)
이는..
특별한 부르심을 입은 사역자들만이 아니라
모든 그리스도인에게 해당되는 말씀입니다.
주님이 십자가에 달리신 것은
이땅 모든 사람들로 인함이기 때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아버지의 뜻을 행하기 위해
인간으로 오셔서 순종하셨던 것처럼..
우리 역시
하나님의 뜻대로 순종하는 삶을 살 때
주님께서 우리를 합당한 자로 여겨주실 것입니다.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마 7:21)
입술로만이 아니라..
중심으로 주님을 믿고 따르는 자들이
이 시대에 알곡된 주님의 신부들입니다.